장소 | 시안미술관 본관 |
기간 | 2026년 8월 1일 ~ 2026년 8월 30일 |
주최 | 시안미술관 |
주관 | 시안미술관 |
작가 | 강보민, 김국희, 남윤주, 라유, 백권도, 이미지, 이수형, 하수현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천시 |
GOOD PLACE
현대인은 늘 역할과 책임이 부여된 공간에 속해 살아간다. 안식처인 집(제1의 공간)에는 가족으로서의 의무가, 일터(제2의 공간)에는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가 지배하며, 이곳에서 주어지는 휴식조차 결국 성과를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곤 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가 명명한 제3의 공간은 사회적 계급과 의무가 소거된 평등하고 열린 장소를 의미한다. 목적 없이 이루어지는 우연한 마주침이 그곳의 조건이다. 그러나 그가 예시로 들었던 카페와 술집을 돌이켜보면, 오늘날 그곳들은 노트북을 펼쳐 일하는 장소가 되었거나 회식이라는 이름의 업무가 되었다.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 공간이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번 전시는 그 사라진 자리를 예술이 대신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참여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각자의 작업세계는 스스로 구축한 제3의 공간이다.
현실의 의무와 사회적 강박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이며,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진다. 그 세계가 전시장에 놓일 때, 제3의 공간의 역할을 떠맡는 것은 미술관이라는 건물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잠시 그 세계 안에 머물며, 바깥의 직급과 역할과 효율이 힘을 잃는 시간을 경험한다. 전시장은 그렇게 지어진 세계가 여럿 놓인 공간이 된다. 관객은 각자의 속도로 그 사이를 오가며, 어떤 작품 앞에서는 오래 머물고 어떤 작품은 그냥 지나친다. 머물지 않기로 하는 것 또한 이곳에서 허락된다. 다른 제3의 공간이 모두 사라진 오늘, 예술이 그 역할을 부여받게 된 까닭을 이번 전시를 통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장소 | 시안미술관 본관 |
기간 | 2026년 8월 1일 ~ 2026년 8월 30일 |
주최 | 시안미술관 |
주관 | 시안미술관 |
작가 | 강보민, 김국희, 남윤주, 라유, 백권도, 이미지, 이수형, 하수현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천시 |
GOOD PLACE
현대인은 늘 역할과 책임이 부여된 공간에 속해 살아간다. 안식처인 집(제1의 공간)에는 가족으로서의 의무가, 일터(제2의 공간)에는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가 지배하며, 이곳에서 주어지는 휴식조차 결국 성과를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곤 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가 명명한 제3의 공간은 사회적 계급과 의무가 소거된 평등하고 열린 장소를 의미한다. 목적 없이 이루어지는 우연한 마주침이 그곳의 조건이다. 그러나 그가 예시로 들었던 카페와 술집을 돌이켜보면, 오늘날 그곳들은 노트북을 펼쳐 일하는 장소가 되었거나 회식이라는 이름의 업무가 되었다.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 공간이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번 전시는 그 사라진 자리를 예술이 대신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참여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각자의 작업세계는 스스로 구축한 제3의 공간이다.
현실의 의무와 사회적 강박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이며,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진다. 그 세계가 전시장에 놓일 때, 제3의 공간의 역할을 떠맡는 것은 미술관이라는 건물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잠시 그 세계 안에 머물며, 바깥의 직급과 역할과 효율이 힘을 잃는 시간을 경험한다. 전시장은 그렇게 지어진 세계가 여럿 놓인 공간이 된다. 관객은 각자의 속도로 그 사이를 오가며, 어떤 작품 앞에서는 오래 머물고 어떤 작품은 그냥 지나친다. 머물지 않기로 하는 것 또한 이곳에서 허락된다. 다른 제3의 공간이 모두 사라진 오늘, 예술이 그 역할을 부여받게 된 까닭을 이번 전시를 통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