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간 | 2023-04-14 ~ 2023-06-25 |
장소 | 시안미술관 본관 1, 3전시실 |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ICOM Korea) |
주관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
시행 | 시안미술관 |
작가 | 오쿠보 에이지 |
전시기획 | 박천 |
전시총괄 | 김현민 |
Walking on the Quest - 위대한 여정
대지미술(Land Art, Earth Works)은 1960년대 중반에 등장하여 1970년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실험적 예술이다. 대지미술은 모더니즘적인 미술, 즉 화이트 큐브(White Cube; 미술관 혹은 박물관)의 권력에서 벗어나 예술을 더 자유롭게 확장하여 표현하고자 시작되었다. 초기의 대지미술가들은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 공간에 한정되어 있던, 그리고 상업적 틀 안에 갇혀 있던 예술을 대자연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방출시켰다. 다시 말해, 자연을 캔버스에 옮기기만 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대지미술은 자연 자체를 캔버스 삼아, 자연 속의 미술을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대지미술은 풍경(자연) 자체를 편집하거나 천연 재료를 사용하여 자연적 환경에서 거대한 스케일로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형태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동아시아의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쿠보 에이지의 대지미술은 서구권의 대지미술과 약간의 유사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일본만의 문화적·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접근한다. 환언하자면 일본의 미학과 전통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작품과 자연 환경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데, 그 속에서 자연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인식하여 작품으로써 우리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오쿠보 에이지가 자연 속에서 메시지를 인식하는 ‘과정’은 그의 작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쉽게 보여주는 것이 2019년에 시안미술관에서 진행했던 《환류》라는 전시를 통해 짧게 기록했던 에세이이다.
한국 대구 중심가에 옛 분위기가 살아있는 한 집이 있다.
폭 1.5미터 정도의 개미가 다닐 것 같은 좁은 통로, 골목의 한 구획에
내가 대구를 방문할 때 마다 꼭 한번은 들리는 다방이 있다.
그럭저럭 30년 전부터 박현기를 비롯해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다방.
하지만 그 다방의 한자 이름은 모르고 지냈다.
…
미도다방의 분위기는 시간을 생각하게 해준다.
오늘이야 말로 가게 이름에 어떤 한자를 쓰는지 알고 가자.
신경애 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도다방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美土’인가 ‘美道’가 인가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美土茶房’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시안미술관에서의 기획전 이야기에 몰두했고 이윽고 가게를 나섰다.
이번에도 미도다방의 한자 이름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어쩌면 ‘환류’란 이런 것이리라.
일상 속에서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 후 몇 번 방문하면서 다방의 이름(한자)을 알게 되었다.
‘美都茶房’이다. 대구에 사는 사람이면 대체로 알고 있다. 아름다운 이름이다.
━ 오쿠보 에이지, 《환류》展 중 「다방」에서
오쿠보 에이지는 선험적 혹은 경험적 정보에 대한 예술적 호기심을 직접적으로 대상과 마주하는 신체적 감각을 이용하여 추적하고 그것을 체화하여 작품으로 드러낸다. 다시 말해 오쿠보 에이지에게 있어 예술적 영감을 풀어내는 방식은 직접 그 대상과 마주하고 경험하여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미도다방’이라는 곳에서의 기억을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웃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그 장소의 정확한 의미와 내러티브를 파악하고 기록한다. 물론 미도다방에서의 기억들이 그가 제작해온 작품들과 조금은 다른 맥락에 위치하고 있겠지만, 이와 같은 삶의 방식과 태도는 우리에게 그가 걸어온 예술 세계에 대한 여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에서 오쿠보 에이지는 경험자, 관찰자, 전달자의 역할을 겸하며 여정을 시작한다.
이번 시안미술관의 《Walking on the Quest-위대한 여정》展은 오쿠보 에이지의 여정에 있어 예술을 대하는 과정 즉, 태도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였다. 서술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그의 태도에는 그가 좇는 ‘원류’ 그리고 ‘환류’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내러티브를 세 가지 형식으로 구분지어 제시하고 이를 통해 오쿠보 에이지의 여정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먼저 첫 번째 공간에서는 자연에서 진행했던 작업을 아카이빙하여 보여주는데, 이는 자연을 캔버스 삼아 작업을 진행하는 대지미술의 본연의 형식을 전시 공간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두 번째 공간에서는 자연에서 수집되어 새로운 내러티브를 획득한 오브제들이 공간과 함께 어울린다. 그저 자연에 소속되어 있을 뿐이었던 일반적인 사물들(시안미술관 근처에 있었던 돌과 나무들)이 오쿠보 에이지를 통해 시안미술관과 영천이라는 장소로 특정 지어지며 기존에 없었던 혹은 발견하지 못했던 내러티브가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오쿠보 에이지의 회화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식(form)을 상징하는 화이트 큐브라는 공간 그리고 이와는 대립 지점에 위치하는 대지미술이라는 상반된 형식을 두고, 오쿠보 에이지는 풍경에 자연스럽게 작품을 녹여낸 것과 같이 화이트 큐브 공간에 가장 보편적인 형식인 회화 작품으로 자연적 사물들을 변모시켜 ‘어울림’을 실험한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공간에서는 이러한 그의 예술적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걷기’ 작품을 만나게 된다. ‘걷기’ 작품들은 신체적이고 경험적이며 회화적이다. 또한 자연 그대로의 물성을 드러내며 아카이브화 되어 관객과 조우하게 된다. 결국 관객들은 마지막 공간에서 오쿠보 에이지 예술의 ‘원류’를 확인하게 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오쿠보 에이지의 작품은 풍경(공간, 장소)의 미학적 시선을 강조함과 동시에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도록 설계되어 자연의 힘에 반응되도록 제작되어지기 때문에 장소 특정적이기도 하면서 시간 특정적이기도 하다. 요컨대 일반적인 대지미술이 예술과 자연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에 도전하려는 경향이 짙은 반면, 오쿠보 에이지의 작품은 모든 요소의 조화와 상호 연결성, 환류를 강조한다. 그렇기에 오쿠보 에이지의 작품은 작품과 주변 환경이 가지는 각각의 내러티브 간의 미묘한 연결성을 보여주며 이러한 연결성은 오쿠보 에이지가 예술 실천의 태도로써 수행하고 있는 ‘걷기’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쿠보 에이지가 걸어온 여정은 그가 지나온 시공간의 흔적으로 기록되어 예술적 형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때문에 오쿠보 에이지에게 ‘여정(걷기)’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수단이자 존재의 증거이다.
전시기간 | 2023-04-14 ~ 2023-06-25 |
장소 | 시안미술관 본관 1, 3전시실 |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ICOM Korea) |
주관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
시행 | 시안미술관 |
작가 | 오쿠보 에이지 |
전시기획 | 박천 |
전시총괄 | 김현민 |
Walking on the Quest - 위대한 여정
대지미술(Land Art, Earth Works)은 1960년대 중반에 등장하여 1970년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실험적 예술이다. 대지미술은 모더니즘적인 미술, 즉 화이트 큐브(White Cube; 미술관 혹은 박물관)의 권력에서 벗어나 예술을 더 자유롭게 확장하여 표현하고자 시작되었다. 초기의 대지미술가들은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 공간에 한정되어 있던, 그리고 상업적 틀 안에 갇혀 있던 예술을 대자연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방출시켰다. 다시 말해, 자연을 캔버스에 옮기기만 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대지미술은 자연 자체를 캔버스 삼아, 자연 속의 미술을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대지미술은 풍경(자연) 자체를 편집하거나 천연 재료를 사용하여 자연적 환경에서 거대한 스케일로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형태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동아시아의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쿠보 에이지의 대지미술은 서구권의 대지미술과 약간의 유사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일본만의 문화적·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접근한다. 환언하자면 일본의 미학과 전통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작품과 자연 환경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데, 그 속에서 자연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인식하여 작품으로써 우리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오쿠보 에이지가 자연 속에서 메시지를 인식하는 ‘과정’은 그의 작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쉽게 보여주는 것이 2019년에 시안미술관에서 진행했던 《환류》라는 전시를 통해 짧게 기록했던 에세이이다.
한국 대구 중심가에 옛 분위기가 살아있는 한 집이 있다.
폭 1.5미터 정도의 개미가 다닐 것 같은 좁은 통로, 골목의 한 구획에
내가 대구를 방문할 때 마다 꼭 한번은 들리는 다방이 있다.
그럭저럭 30년 전부터 박현기를 비롯해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다방.
하지만 그 다방의 한자 이름은 모르고 지냈다.
…
미도다방의 분위기는 시간을 생각하게 해준다.
오늘이야 말로 가게 이름에 어떤 한자를 쓰는지 알고 가자.
신경애 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도다방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美土’인가 ‘美道’가 인가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美土茶房’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시안미술관에서의 기획전 이야기에 몰두했고 이윽고 가게를 나섰다.
이번에도 미도다방의 한자 이름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어쩌면 ‘환류’란 이런 것이리라.
일상 속에서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 후 몇 번 방문하면서 다방의 이름(한자)을 알게 되었다.
‘美都茶房’이다. 대구에 사는 사람이면 대체로 알고 있다. 아름다운 이름이다.
━ 오쿠보 에이지, 《환류》展 중 「다방」에서
오쿠보 에이지는 선험적 혹은 경험적 정보에 대한 예술적 호기심을 직접적으로 대상과 마주하는 신체적 감각을 이용하여 추적하고 그것을 체화하여 작품으로 드러낸다. 다시 말해 오쿠보 에이지에게 있어 예술적 영감을 풀어내는 방식은 직접 그 대상과 마주하고 경험하여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미도다방’이라는 곳에서의 기억을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웃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그 장소의 정확한 의미와 내러티브를 파악하고 기록한다. 물론 미도다방에서의 기억들이 그가 제작해온 작품들과 조금은 다른 맥락에 위치하고 있겠지만, 이와 같은 삶의 방식과 태도는 우리에게 그가 걸어온 예술 세계에 대한 여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에서 오쿠보 에이지는 경험자, 관찰자, 전달자의 역할을 겸하며 여정을 시작한다.
이번 시안미술관의 《Walking on the Quest-위대한 여정》展은 오쿠보 에이지의 여정에 있어 예술을 대하는 과정 즉, 태도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였다. 서술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그의 태도에는 그가 좇는 ‘원류’ 그리고 ‘환류’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내러티브를 세 가지 형식으로 구분지어 제시하고 이를 통해 오쿠보 에이지의 여정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먼저 첫 번째 공간에서는 자연에서 진행했던 작업을 아카이빙하여 보여주는데, 이는 자연을 캔버스 삼아 작업을 진행하는 대지미술의 본연의 형식을 전시 공간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두 번째 공간에서는 자연에서 수집되어 새로운 내러티브를 획득한 오브제들이 공간과 함께 어울린다. 그저 자연에 소속되어 있을 뿐이었던 일반적인 사물들(시안미술관 근처에 있었던 돌과 나무들)이 오쿠보 에이지를 통해 시안미술관과 영천이라는 장소로 특정 지어지며 기존에 없었던 혹은 발견하지 못했던 내러티브가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오쿠보 에이지의 회화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식(form)을 상징하는 화이트 큐브라는 공간 그리고 이와는 대립 지점에 위치하는 대지미술이라는 상반된 형식을 두고, 오쿠보 에이지는 풍경에 자연스럽게 작품을 녹여낸 것과 같이 화이트 큐브 공간에 가장 보편적인 형식인 회화 작품으로 자연적 사물들을 변모시켜 ‘어울림’을 실험한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공간에서는 이러한 그의 예술적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걷기’ 작품을 만나게 된다. ‘걷기’ 작품들은 신체적이고 경험적이며 회화적이다. 또한 자연 그대로의 물성을 드러내며 아카이브화 되어 관객과 조우하게 된다. 결국 관객들은 마지막 공간에서 오쿠보 에이지 예술의 ‘원류’를 확인하게 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오쿠보 에이지의 작품은 풍경(공간, 장소)의 미학적 시선을 강조함과 동시에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도록 설계되어 자연의 힘에 반응되도록 제작되어지기 때문에 장소 특정적이기도 하면서 시간 특정적이기도 하다. 요컨대 일반적인 대지미술이 예술과 자연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에 도전하려는 경향이 짙은 반면, 오쿠보 에이지의 작품은 모든 요소의 조화와 상호 연결성, 환류를 강조한다. 그렇기에 오쿠보 에이지의 작품은 작품과 주변 환경이 가지는 각각의 내러티브 간의 미묘한 연결성을 보여주며 이러한 연결성은 오쿠보 에이지가 예술 실천의 태도로써 수행하고 있는 ‘걷기’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쿠보 에이지가 걸어온 여정은 그가 지나온 시공간의 흔적으로 기록되어 예술적 형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때문에 오쿠보 에이지에게 ‘여정(걷기)’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수단이자 존재의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