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간 | 2007-09-08 ~ 2007-10-28 |
장소 | 시안미술관 본관 |
주최 | 시안미술관 |
주관 | 시안미술관 |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상북도, 영천시, 한국박물관협회, 한국사립미술관협회 |
작가 | 권정순, 이정옥 |
담당 | 김현민 |
민화, 어제와 오늘
민화의 재발견
정병모 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교수
1884년 현재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인스티튜션(Smithsonian Institution)의 전신인 미국국립박물관의 “스미소니언 무관(Smithsonian Attaché)”인 존 버나도우(John Baptiste Bernadou, 1858-1908)가 조선을 방문하였다. 그의 임무는 조선의 경제와 군사적 정세를 살피고 물질문화를 조사하는 일이다. 당시 그는 민화를 비롯한 민속품들을 수집하여 돌아갔다. 그 민화들은 스미소니언 인스티튜션에 보관되어 있다가, 2007년 스미소니언 자연산박물관에서 한국실을 개관하면서 일부 전시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민화가 미국, 더 나아가 세계에 공식적으로 전해진 첫번째 예이다.
이보다 7년 뒤의 일이다. 프랑스의 민속학자인 샤를르 바라(Charles Varat, 1842/43~1893)는 1888년부터 1889년까지 50일간 우리나라를 여행하였다. 그는 이때 민화를 비롯한 민속품들을 수집하였다. 그는 1891년 프랑스에 가져간 민속품들을 파리 기메동양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마침 당시 파리에는 조선인 한사람이 유학을 하고 있었다. 바로 후에 김옥균을 암살한 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홍종우(洪鍾宇, 1854~?)다. 그가 사를르 바라가 기증한 민속품들을 정리하였다. 그는 1890년 일본을 거쳐 서양의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하였다. 파리에서 화가 펠릭스 레가메 (Félix Regamey, 1844~1907)의 도움으로 기메동양미술관에서 촉탁 직원으로 일하고, 1892년에는 기메동양미술관을 세운 에밀 기메(Emile Guimet, 1836~1918)의 지원을 받아 춘향전을 번역하였다. 이 원고는 1892년 당튀(Dentu)출판사에 간행되어 우리나라의 문학이 해외에 최초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버나도우와 바라가 수집해간 민화들은 화풍이 거의 같다. 버나도우가 수집한 민화 〈봉황도>와 4년 뒤 바라가 수집한 민화 〈봉황도〉를 비교하여 보면, 일부 색채와 선이 다를 뿐 거의 같은 본을 갖고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같은 화가 또는 같은 공방의 작품을 수집한 것으로 짐작된다. 좀 더 추정이 허락된다면, 청계천 광교의 그림파는 가게에서 구입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당시 광교의 그림 파는 가게가 서울에서 민화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두 경우는 민화가 민속품으로 미국과 유럽에 전해진 것이고, 민화의 가치와 매력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은 훨씬 뒤인 1957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에 의해서이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14년부터이다. 당시 한성(지금의 서울) 조선공립소학교의 교사인 아사카와 노리타가(淺川伯敎, 1884~1964)는 시라카바(白樺) 동인을 대표로 야나기 무네요시가 소장하고 있는 로댕 조각을 관람하기 위해 도쿄를 방문하였다. 그는 방문 선물로 조선시대 백자병인 <청화백자모깎기초화문표주박병>(일본민예관 소장)을 가져갔다. 그런데 이 조그만 도자기 한 점이 일본 근대 문화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발단이 된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 백자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 감동이 얼마나 컸는지 그가 젊은 시절 심취했던 로댕 조각의 연구를 멈추고 조선의 민예품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에 심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더욱 확장되어 급기야 민예운동을 벌이고 일본민예관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도자기로 부터 시작된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은 드디어 민화에 이르렀다. 그는 우리의 민화를 이미 1921년부터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1957년 제자로부터 선물을 받은 조선 민화 책거리 두 점은 민화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화의 운명을 뒤바꾸는 사건이 되었다. 그는 이들 민화를 보고 감동에 못이겨 "불가사의한 조선민화'라는 수필을 썼다. 그것도 아픈 몸을 이끌고 그 감동을 글로 토해내었다. 서양의 근대미술 교육을 받은 그에게 매우 비과학적이고 불합리적인 표현으로 점철된 민화 책거리는 오히려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비쳤던 것이다. 같은 그림을 두고 아나기 무네요시의 영향을 발은 염직공예가인 세리지와 케이스케(芹澤銈介, 1895~1984)는 무심코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고 불가사의한 놀라운 화경이라고 극찬하였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작은 글 하나가 일파만파로 파장을 일으키면서 일본에 우리 민화를 수집하는 붐을 일으키고, 이러한 관심은 거꾸로 한국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의 급격한 경제발전은 일본에서 조선 민화를 수집하는 열기를 높이는 데 한 몫을 한다. 일본에서의 이러한 관심을 반영한 책이 1982년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간행한 『이조의 민화(李朝の民畫)』라는 도록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알려져 한국의 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 소장된 이들 민화는 필자의 주선과 기획으로 2005년 9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반갑다 우리 민화"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민화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 조자용(趙子庸, 1926~2000)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민화를 수집하면서 1970년 에밀레박물관을 세우고 호랑이 그림에 관한 최초 영문서적인 Humour of Korean Tiger를 간행하였고, 1976년부터 그 소장품을 갖고 미국과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전시회를 열면서 민화를 세계에 알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그는 호랑이 그림을 집중 연구하면서, 해학이 작품세계의 원천임을 밝혔다. 특히 그가 소장한 까치호랑이(현재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가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의 원천 자료로 사용되었다.
김철순(金哲淳)은 조선민화를 ‘꿈의 민화’, '사랑의 민화', ‘믿음의 민화'라 한다. 민화의 상상력, 휴머니즘, 그리고 세계관을 지적한 것이다. 꿈의 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민화는 현재, 현세를 아름답고 환상적인 꿈으로 보았다. 꿈은 이룰 수 없는, 바랄 수 없는 것에 걸어보는 기대가 아니라 바로 이 세상을 어린이들처럼 누나의 수틀 들여다보듯 아름답게 본 어른들의 꿈이 바로 한국 민화의 꿈이었다. 그들은 인생과 자연 자체가 큰 꿈이고 예술이 바로 꿈이라고 믿고 있었다. 먼저 사람과 인생 자체를 아름다운 꿈으로 표현했다.“
민화 속의 꿈이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현재에 펼쳐진 환상‘이다. 현재의 시점과 환상의 꿈, 서로 차원을 달리하는 두 세계가 공존하는 그림을 민화로 본 것이다. 민화는 현실을 그린듯하지만 현실성이 없고, 상상의 세계인 듯하지만 그 기반은 현실에 두고 있다. 이를 뭉뚱그려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인 이소자키 아라타는 민화에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매너리즘의 세계가 전개된다."고 했다. 민화에 펼쳐진 상상력의 세계를 지적한 것이다.
김철순이 내세운 민화의 특징은 1998년 호암미술관에서 개최된 민화전의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다. '꿈과 사랑' 이란 전시회의 제목은 이러한 인식에 대한 공감을 보여준다. 민화의 세계에는 이상을 향한 꿈이 있고, 그것에서 피어나는 정서는 따뜻하고 사랑스런 인간미가 있다. 호암미술관에서 이미 1988년 개관기념 전시회로서 민화전을 열어 민화의 관심을 일반인에 확산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민화에는 인간적인 친근함으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는 어떠한 권위도 용납되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을 이상으로 삼는다. 호랑이 그림을 보자. 백수의 왕인 호랑이는 왜 "바보 호랑이"로 전락되는가? 삼국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중원을 호령했던 영웅호걸인 유비, 관우, 장비도 민화 속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여지없이 무장해제된다. 민중들은 자신을 지배하는 존재보다는 자신과 동등하고 친근한 존재를 원한다. 이것이 우리가 민화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휴머니즘의 세계이다.
민화의 매력에 대한 거시적으로 또는 정서적인 측면의 탐구와 더불어 다른 한편에서는 구체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의 탐구도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연구자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화가인 이우환이다. 그는 작가답게 민화세계를 조형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1975년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간행한 『이조민화 李朝民畫』에 실린 글에서 그는 민화의 특색으로 구성미를 들었다.
"한마디로 미의 실체 또는 대상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림의 구조적 짜임에 대해 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민화의 매력은 사실 그대로 묘사한 것보다 대상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짜임새에 있다. 그림 속의 대상들을 하나하나 분해한 뒤 이들을 새로운 구조 속에 재편성한 것이다. 민화가들은 대상을 똑같이 그리기 보다는 생각하고 느끼고 아는 대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한 점에서 민화는 시각의 세계가 아니라 개념의 세계이고,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상상의 세계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에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서 한국인 큐레이터 백금자의 기획으로 "희망과 염원 : 한국의 채색화(Hopes ond Aspirations : Decorative Painting of Korea)”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는 민화뿐만 아니라 궁중회화, 불화를 포함한 채색화 전반을 다루었다. 그러나 전시회의 중심이 민화이고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민화라는 용어 대신에 채색화[Decorative Painting]란 기법적인 개념을 새롭게 제안하였다. 이 개념은 구미의 학계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이후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루어진 민화 전시회에서는 Folk Painting 대신 거의 Decorative Painting이란 용어를 채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1년 겨울 파리에서도 주목할만한 민화 전시회가 열렸다. 파리 기메동양박물관(Guimet musée)에서 이우환이 기증한 민화들을 전시한 “한국의 향수(Nostagies coréennes)”를 개최하였다. 이 전시회에서 이우환은 민화의 특징으로 “추상적인 환상(abstract fantasy)”임을 지적하였다. 민화 속에 담긴 구성미와 추상적 표현을 민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본 것이다.
이 전시회는 유럽인의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유럽의 매스컴에서도 이우환의 민화에 대한 평가처럼 민화의 특색으로 한국적인 추상을 들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로 대변되는 조선이 이웃 중국 및 일본과 달리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회화를 창출한 점에 많은 유럽의 매스컴에서 놀라움을 표한 것이다. 이 전시회의 포스터와 카탈로그의 표지로 쓰인 <신구도 神龜圖>는 민화에 대한 그들의 안목을 대변하여 주기에 충분하다. 이 그림에 대하여 베레니스 조프르와 수네페르(Bérénice Geoffroy-schneiter)는 "비단의 파라다이스 - 한국의 병풍들“이란 제목의 전시회 논평에서 "특히 바다 풍경 한가운데 마지막 숨을 내쉬는 거북이가 환상적 세계의 부서지기 쉬운 상징”이라 하였고, 조선민화는 한마디로 "자연의 꿈'이라고 은유하였다. 루브르박물관(Louvre musée) 잡지에 실린 이 전시회 평에서는 조선민화를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주제들에 의해 고취된 주제들을 탁월한 폭을 갖는 추상적 구성 속에서 발전시킨" 그림이라고 했다.
오늘날 한국 민화의 인프라는 동아시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튼튼하다. 사회교육기관을 통해 민화 작가가 상당수 배출되고, 이와 연계되어 많은 전시회가 열리며, 현대 작가들도 민화의 현대화하려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민화'라는 주제어를 치면, 매일 같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민화에 대한 각종 활동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현대에 민화의 열기가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먼저 민화는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작가들은 한국적인 특색이 물씬 풍기면서 현대적인 조형을 갖춘 민화의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분청사기를 현대화하는 작업이 활발한 진행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민화를 통해 우리의 옛 것에 대한 갈망과 현대적인 취향이 절묘하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화가 집안을 치장하는 장식화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민화는 장식화로서만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민화 특유의 밝은 정서는 현대인의 취향에 부합된다.
그런데 앞서 거론하였듯이 민화의 가치를 재평가한 작업이 우리보다는 외국인에 의해 먼저 시작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민화를 세계무대에 내세울만한 가능성을 시시하여 준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문화계를 강타한 우키요에도 우리 민화처럼 서민회화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화는 누구나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이다.
우키요에는 민화를 세계화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일본에서 수입한 도자기를 싼 포장지로 사용했던 우키요에를 인상파 화가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그 가치를 발견하였다.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파리 시설 자신의 아틀리에서 우키요에를 붙여놓고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역사가 오래된 유럽이나 미국의 박물관치고 우키요에를 소장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우키요에는 세계적인 회화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각국에 있는 일본식당이나 일본의 문화상품들에는 우키요에의 미인들이나 배우들이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영어로 쓰인 책을 보면, “Japanese Art”보다 “Japanese Prints(Ukiyoe)"가 더 많이 출판되었고, 심지어 ”Hokusai" 나 “Hirosige"와 같이 우키요에의 작가 이름으로 된 영문 책이 팔리고 있다. 이미 우키요에의 작가들은 구미인들에게는 교양이 되었다. 만일 ”Hongdo Kim“이란 영문 책을 낸다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김홍도를 아는 외국인이 얼마나 될지 반문하고 싶다. 이러한 일본열풍을 자포니즘(Japonism)이라 부른다.
그러나 민화를 세계화하는 노력에는 아쉬움이 많다. 외국에서 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이를 지속적으로 증진시키는 움직임이 미약했다. 중국은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하여 도자기가 영어로 ‘china', 즉 진이라는 국명을 사용하고 중국열풍을 일으켰다. 일본은 서민회화인 '우키요에'를 유럽과 미국의 문화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우리는 애석하게도 우리의 전통미술이 세계인의 본격적인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도 민화는 다른 분야에 비하여 세계화의 가능성이 높다. 민화는 채색화로 강렬한 조형세계를 지니고 있고,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을 함께 맛볼 수 있으며, 해외에서 붐을 일으켜 거꾸로 국내에서 인기를 모은 전통미술이기 때문이다. 민화는 조선 5백년의 끄트머리를 장식한 우리나라 전통미술 가운데 막내인데다 이름 없는 화공들의 그림이지만, 현대에 와서 각광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세계에 알리느냐에 있다. 우리는 민화를 현재 살아있는 전통이자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문화유산으로 가꾸어나가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조선민화를 세계 유수 박물관에 전시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외국어로 된 민화 책을 발간할 필요가 있다. 조선민화의 가치를 세계 문화계에 널리 알려 세계문화 속에 우뚝 서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업인 것이다.
전시기간 | 2007-09-08 ~ 2007-10-28 |
장소 | 시안미술관 본관 |
주최 | 시안미술관 |
주관 | 시안미술관 |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상북도, 영천시, 한국박물관협회, 한국사립미술관협회 |
작가 | 권정순, 이정옥 |
담당 | 김현민 |
민화, 어제와 오늘
민화의 재발견
정병모 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교수
1884년 현재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인스티튜션(Smithsonian Institution)의 전신인 미국국립박물관의 “스미소니언 무관(Smithsonian Attaché)”인 존 버나도우(John Baptiste Bernadou, 1858-1908)가 조선을 방문하였다. 그의 임무는 조선의 경제와 군사적 정세를 살피고 물질문화를 조사하는 일이다. 당시 그는 민화를 비롯한 민속품들을 수집하여 돌아갔다. 그 민화들은 스미소니언 인스티튜션에 보관되어 있다가, 2007년 스미소니언 자연산박물관에서 한국실을 개관하면서 일부 전시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민화가 미국, 더 나아가 세계에 공식적으로 전해진 첫번째 예이다.
이보다 7년 뒤의 일이다. 프랑스의 민속학자인 샤를르 바라(Charles Varat, 1842/43~1893)는 1888년부터 1889년까지 50일간 우리나라를 여행하였다. 그는 이때 민화를 비롯한 민속품들을 수집하였다. 그는 1891년 프랑스에 가져간 민속품들을 파리 기메동양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마침 당시 파리에는 조선인 한사람이 유학을 하고 있었다. 바로 후에 김옥균을 암살한 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홍종우(洪鍾宇, 1854~?)다. 그가 사를르 바라가 기증한 민속품들을 정리하였다. 그는 1890년 일본을 거쳐 서양의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하였다. 파리에서 화가 펠릭스 레가메 (Félix Regamey, 1844~1907)의 도움으로 기메동양미술관에서 촉탁 직원으로 일하고, 1892년에는 기메동양미술관을 세운 에밀 기메(Emile Guimet, 1836~1918)의 지원을 받아 춘향전을 번역하였다. 이 원고는 1892년 당튀(Dentu)출판사에 간행되어 우리나라의 문학이 해외에 최초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버나도우와 바라가 수집해간 민화들은 화풍이 거의 같다. 버나도우가 수집한 민화 〈봉황도>와 4년 뒤 바라가 수집한 민화 〈봉황도〉를 비교하여 보면, 일부 색채와 선이 다를 뿐 거의 같은 본을 갖고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같은 화가 또는 같은 공방의 작품을 수집한 것으로 짐작된다. 좀 더 추정이 허락된다면, 청계천 광교의 그림파는 가게에서 구입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당시 광교의 그림 파는 가게가 서울에서 민화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두 경우는 민화가 민속품으로 미국과 유럽에 전해진 것이고, 민화의 가치와 매력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은 훨씬 뒤인 1957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에 의해서이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14년부터이다. 당시 한성(지금의 서울) 조선공립소학교의 교사인 아사카와 노리타가(淺川伯敎, 1884~1964)는 시라카바(白樺) 동인을 대표로 야나기 무네요시가 소장하고 있는 로댕 조각을 관람하기 위해 도쿄를 방문하였다. 그는 방문 선물로 조선시대 백자병인 <청화백자모깎기초화문표주박병>(일본민예관 소장)을 가져갔다. 그런데 이 조그만 도자기 한 점이 일본 근대 문화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발단이 된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 백자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 감동이 얼마나 컸는지 그가 젊은 시절 심취했던 로댕 조각의 연구를 멈추고 조선의 민예품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에 심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더욱 확장되어 급기야 민예운동을 벌이고 일본민예관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도자기로 부터 시작된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은 드디어 민화에 이르렀다. 그는 우리의 민화를 이미 1921년부터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1957년 제자로부터 선물을 받은 조선 민화 책거리 두 점은 민화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화의 운명을 뒤바꾸는 사건이 되었다. 그는 이들 민화를 보고 감동에 못이겨 "불가사의한 조선민화'라는 수필을 썼다. 그것도 아픈 몸을 이끌고 그 감동을 글로 토해내었다. 서양의 근대미술 교육을 받은 그에게 매우 비과학적이고 불합리적인 표현으로 점철된 민화 책거리는 오히려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비쳤던 것이다. 같은 그림을 두고 아나기 무네요시의 영향을 발은 염직공예가인 세리지와 케이스케(芹澤銈介, 1895~1984)는 무심코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고 불가사의한 놀라운 화경이라고 극찬하였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작은 글 하나가 일파만파로 파장을 일으키면서 일본에 우리 민화를 수집하는 붐을 일으키고, 이러한 관심은 거꾸로 한국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의 급격한 경제발전은 일본에서 조선 민화를 수집하는 열기를 높이는 데 한 몫을 한다. 일본에서의 이러한 관심을 반영한 책이 1982년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간행한 『이조의 민화(李朝の民畫)』라는 도록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알려져 한국의 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 소장된 이들 민화는 필자의 주선과 기획으로 2005년 9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반갑다 우리 민화"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민화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 조자용(趙子庸, 1926~2000)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민화를 수집하면서 1970년 에밀레박물관을 세우고 호랑이 그림에 관한 최초 영문서적인 Humour of Korean Tiger를 간행하였고, 1976년부터 그 소장품을 갖고 미국과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전시회를 열면서 민화를 세계에 알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그는 호랑이 그림을 집중 연구하면서, 해학이 작품세계의 원천임을 밝혔다. 특히 그가 소장한 까치호랑이(현재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가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의 원천 자료로 사용되었다.
김철순(金哲淳)은 조선민화를 ‘꿈의 민화’, '사랑의 민화', ‘믿음의 민화'라 한다. 민화의 상상력, 휴머니즘, 그리고 세계관을 지적한 것이다. 꿈의 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민화는 현재, 현세를 아름답고 환상적인 꿈으로 보았다. 꿈은 이룰 수 없는, 바랄 수 없는 것에 걸어보는 기대가 아니라 바로 이 세상을 어린이들처럼 누나의 수틀 들여다보듯 아름답게 본 어른들의 꿈이 바로 한국 민화의 꿈이었다. 그들은 인생과 자연 자체가 큰 꿈이고 예술이 바로 꿈이라고 믿고 있었다. 먼저 사람과 인생 자체를 아름다운 꿈으로 표현했다.“
민화 속의 꿈이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현재에 펼쳐진 환상‘이다. 현재의 시점과 환상의 꿈, 서로 차원을 달리하는 두 세계가 공존하는 그림을 민화로 본 것이다. 민화는 현실을 그린듯하지만 현실성이 없고, 상상의 세계인 듯하지만 그 기반은 현실에 두고 있다. 이를 뭉뚱그려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인 이소자키 아라타는 민화에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매너리즘의 세계가 전개된다."고 했다. 민화에 펼쳐진 상상력의 세계를 지적한 것이다.
김철순이 내세운 민화의 특징은 1998년 호암미술관에서 개최된 민화전의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다. '꿈과 사랑' 이란 전시회의 제목은 이러한 인식에 대한 공감을 보여준다. 민화의 세계에는 이상을 향한 꿈이 있고, 그것에서 피어나는 정서는 따뜻하고 사랑스런 인간미가 있다. 호암미술관에서 이미 1988년 개관기념 전시회로서 민화전을 열어 민화의 관심을 일반인에 확산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민화에는 인간적인 친근함으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는 어떠한 권위도 용납되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을 이상으로 삼는다. 호랑이 그림을 보자. 백수의 왕인 호랑이는 왜 "바보 호랑이"로 전락되는가? 삼국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중원을 호령했던 영웅호걸인 유비, 관우, 장비도 민화 속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여지없이 무장해제된다. 민중들은 자신을 지배하는 존재보다는 자신과 동등하고 친근한 존재를 원한다. 이것이 우리가 민화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휴머니즘의 세계이다.
민화의 매력에 대한 거시적으로 또는 정서적인 측면의 탐구와 더불어 다른 한편에서는 구체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의 탐구도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연구자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화가인 이우환이다. 그는 작가답게 민화세계를 조형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1975년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간행한 『이조민화 李朝民畫』에 실린 글에서 그는 민화의 특색으로 구성미를 들었다.
"한마디로 미의 실체 또는 대상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림의 구조적 짜임에 대해 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민화의 매력은 사실 그대로 묘사한 것보다 대상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짜임새에 있다. 그림 속의 대상들을 하나하나 분해한 뒤 이들을 새로운 구조 속에 재편성한 것이다. 민화가들은 대상을 똑같이 그리기 보다는 생각하고 느끼고 아는 대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한 점에서 민화는 시각의 세계가 아니라 개념의 세계이고,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상상의 세계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에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서 한국인 큐레이터 백금자의 기획으로 "희망과 염원 : 한국의 채색화(Hopes ond Aspirations : Decorative Painting of Korea)”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는 민화뿐만 아니라 궁중회화, 불화를 포함한 채색화 전반을 다루었다. 그러나 전시회의 중심이 민화이고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민화라는 용어 대신에 채색화[Decorative Painting]란 기법적인 개념을 새롭게 제안하였다. 이 개념은 구미의 학계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이후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루어진 민화 전시회에서는 Folk Painting 대신 거의 Decorative Painting이란 용어를 채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1년 겨울 파리에서도 주목할만한 민화 전시회가 열렸다. 파리 기메동양박물관(Guimet musée)에서 이우환이 기증한 민화들을 전시한 “한국의 향수(Nostagies coréennes)”를 개최하였다. 이 전시회에서 이우환은 민화의 특징으로 “추상적인 환상(abstract fantasy)”임을 지적하였다. 민화 속에 담긴 구성미와 추상적 표현을 민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본 것이다.
이 전시회는 유럽인의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유럽의 매스컴에서도 이우환의 민화에 대한 평가처럼 민화의 특색으로 한국적인 추상을 들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로 대변되는 조선이 이웃 중국 및 일본과 달리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회화를 창출한 점에 많은 유럽의 매스컴에서 놀라움을 표한 것이다. 이 전시회의 포스터와 카탈로그의 표지로 쓰인 <신구도 神龜圖>는 민화에 대한 그들의 안목을 대변하여 주기에 충분하다. 이 그림에 대하여 베레니스 조프르와 수네페르(Bérénice Geoffroy-schneiter)는 "비단의 파라다이스 - 한국의 병풍들“이란 제목의 전시회 논평에서 "특히 바다 풍경 한가운데 마지막 숨을 내쉬는 거북이가 환상적 세계의 부서지기 쉬운 상징”이라 하였고, 조선민화는 한마디로 "자연의 꿈'이라고 은유하였다. 루브르박물관(Louvre musée) 잡지에 실린 이 전시회 평에서는 조선민화를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주제들에 의해 고취된 주제들을 탁월한 폭을 갖는 추상적 구성 속에서 발전시킨" 그림이라고 했다.
오늘날 한국 민화의 인프라는 동아시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튼튼하다. 사회교육기관을 통해 민화 작가가 상당수 배출되고, 이와 연계되어 많은 전시회가 열리며, 현대 작가들도 민화의 현대화하려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민화'라는 주제어를 치면, 매일 같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민화에 대한 각종 활동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현대에 민화의 열기가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먼저 민화는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작가들은 한국적인 특색이 물씬 풍기면서 현대적인 조형을 갖춘 민화의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분청사기를 현대화하는 작업이 활발한 진행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민화를 통해 우리의 옛 것에 대한 갈망과 현대적인 취향이 절묘하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화가 집안을 치장하는 장식화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민화는 장식화로서만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민화 특유의 밝은 정서는 현대인의 취향에 부합된다.
그런데 앞서 거론하였듯이 민화의 가치를 재평가한 작업이 우리보다는 외국인에 의해 먼저 시작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민화를 세계무대에 내세울만한 가능성을 시시하여 준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문화계를 강타한 우키요에도 우리 민화처럼 서민회화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화는 누구나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이다.
우키요에는 민화를 세계화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일본에서 수입한 도자기를 싼 포장지로 사용했던 우키요에를 인상파 화가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그 가치를 발견하였다.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파리 시설 자신의 아틀리에서 우키요에를 붙여놓고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역사가 오래된 유럽이나 미국의 박물관치고 우키요에를 소장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우키요에는 세계적인 회화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각국에 있는 일본식당이나 일본의 문화상품들에는 우키요에의 미인들이나 배우들이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영어로 쓰인 책을 보면, “Japanese Art”보다 “Japanese Prints(Ukiyoe)"가 더 많이 출판되었고, 심지어 ”Hokusai" 나 “Hirosige"와 같이 우키요에의 작가 이름으로 된 영문 책이 팔리고 있다. 이미 우키요에의 작가들은 구미인들에게는 교양이 되었다. 만일 ”Hongdo Kim“이란 영문 책을 낸다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김홍도를 아는 외국인이 얼마나 될지 반문하고 싶다. 이러한 일본열풍을 자포니즘(Japonism)이라 부른다.
그러나 민화를 세계화하는 노력에는 아쉬움이 많다. 외국에서 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이를 지속적으로 증진시키는 움직임이 미약했다. 중국은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하여 도자기가 영어로 ‘china', 즉 진이라는 국명을 사용하고 중국열풍을 일으켰다. 일본은 서민회화인 '우키요에'를 유럽과 미국의 문화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우리는 애석하게도 우리의 전통미술이 세계인의 본격적인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도 민화는 다른 분야에 비하여 세계화의 가능성이 높다. 민화는 채색화로 강렬한 조형세계를 지니고 있고,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을 함께 맛볼 수 있으며, 해외에서 붐을 일으켜 거꾸로 국내에서 인기를 모은 전통미술이기 때문이다. 민화는 조선 5백년의 끄트머리를 장식한 우리나라 전통미술 가운데 막내인데다 이름 없는 화공들의 그림이지만, 현대에 와서 각광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세계에 알리느냐에 있다. 우리는 민화를 현재 살아있는 전통이자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문화유산으로 가꾸어나가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조선민화를 세계 유수 박물관에 전시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외국어로 된 민화 책을 발간할 필요가 있다. 조선민화의 가치를 세계 문화계에 널리 알려 세계문화 속에 우뚝 서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업인 것이다.